한동안 열세였던 윤석열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윤석열 후보나 이재명 후보나 혹은 안철수 후보가 과연 준비된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상응하는 정권 심판론에 맞서 이재명 후보가 그의 개인기만으로 정권을 지킬 수 있느냐가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수년 전부터 대권의 뜻을 품고 준비했던 이재명 후보가 정권 심판이라는 강력한 어젠다를 품은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과연 따돌릴 수 있을까? 30여 년 전 87년도 선거 때 노태우 후보는 정권 심판이라는 어젠다로 똘똘 뭉친 김영삼, 김대중 두 후보의 공격에 맞서 대권을 차지했다. 그는 무엇을 준비했기에 대통령이 되었을까?
나보다 세고 대세이면 함께하는 펠로우십
노태우 전대통령은 전두환의 이인자임에도 후임 대통령이 된 입지 전적의 인물이다. 푸틴의 2인자이다가 대통령이 된 후 다시 푸틴에게 정권을 이양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와 비슷한 면이 있기는 하다. 정권을 잡기 위해 최선두에 섰던 사람들 중 하나가 왕이 되면 다른 하나는 제거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그는 살아남아 대통령까지 되었다. 탑의 눈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는 조심성 있는 행동과 밑에서 올라오는 도전을 제압하는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군인 시절 전두환은 늘 노태우와 한배를 타고 박정희 대통령을 비호하는 일과 보좌하는 일을 함께 했다. 의리로 맺어진 둘은 전두환이 늘 앞장을 섰으나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았다. 전두환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할 수도 있으나, 노태우의 펠로우십도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월남전에 파병 갔던 노태우는 전장으로 자신을 밀어 넣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전두환의 그늘에 있지만, 실력이 없지 않음을 뽐냈다. 그러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의 비위를 잘 맞추던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고 자신의 선배 그룹 중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전념한다.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려 하지 않고 가능성 높은 사람을 앞세워서 정권을 잡게 만든 것이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후 2인자였던 그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었다. 끝까지 전두환의 뒤를 지켰던 호위 무사 장세동도 그의 경쟁자가 되었다. 장세동은 당시 안기부장으로 대한민국 모든 정보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항상 대통령과 독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노태우 정도는 쉽게 갈아 치울 수 있었다. 노태우가 선택한 방법은 김종필을 만나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정무적인 모든 역할을 다하고 일본과의 협상을 통해 차관을 끌어오는 성과를 냈음에도 권력에서 멀어졌던 사람을 찾아가 정권의 2인자가 해야 할 일을 물었다. 김종필의 코치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노태우는 내무부 장관, 체육부 장관,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등 성과를 낼 수 있으면서 국민들 앞에 설 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꾸준히 국민들에게 알렸다. 국민들 마음속에 전두환 다음 대통령은 노태우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629선언의 타이밍 전략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87년 대한민국 전역은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로 들끓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88년 올림픽을 자신의 손으로 열고 싶었고, 장기집권의 꿈을 이루고 싶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은 부인한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거나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 노태우는 전두환이 2차 집권을 하면 본인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당시 정권을 구성했던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전두환과는 협상의 자리로 나갔다. 너무 빨리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로 바꾼다고 할 경우 전두환 대통령이 레임덕 상태인 것 같이 보일 수 있었고, 그것은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늦게 할 경우에도 국민적 저항에 무릎 꿇는 모양이 될 수도 있었다. 노태우는 대형 사고가 나기 직전 사고를 수습하는 모습의 사람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빠르게 정리하여 헌법부터 고치게 하고 대통령 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게 하는 629선언을 단행했다. 혼자는 이 모든 것이 전두환 대통령의 시나리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행에 옮긴 사람은 노태우였고, 선거를 치른 사람도 노태우였다. 그는 승부를 걸어야 하는 타이밍에 제대로 걸었고 그 전략은 성공했다.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을 던져야 할 타이밍에 걸어야 한다. 처음부터 사과하고 무릎 꿇고 수비하면 기세가 꺾였을 때 만회할 카드가 없어진다. 사과의 이미지가 되면 대통령의 자리는 멀어진다.
"보통사람"이라는 어젠다로 아이덴티티를 포장
노태우는 군인 출신이었다. 516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정당성을 주는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권력을 등에 업고 군 내부 요직을 거쳤다. 군대 내 사조직을 조직하여 자신의 사람을 심기도 했다. 1212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마음대로 가져가 전두환 정권을 만들었다. 광주민주화 항쟁의 희생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선거에서 이기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쟁자들도 쟁쟁했다. 김영삼은 박정희 정권의 독주를 막기 위해 금식하며 국민의 열망을 모았고, 부산 경북이라는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은 미국 정치인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김종필도 매우 노련한 정치인으로 충청도라는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부정선거를 일삼을 지라도 자신의 지지자들이 따를 수 있는 어젠다가 필요했다. 노태우와 그의 세력은 "보통사람"이라는 어젠다를 만들었고, "믿어주세요."라는 선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비록 30%대의 낮은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노태우는 선거로 당당하게 자신의 정권을 이룩할 수 있었다. 지금 선거에서 이재명은 합니다 라는 어젠다를 내놓았다. 그런데, 노태우가 나는 보통사람입니다 라는 어젠다보다 강력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중 최고의 어젠다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어젠다는 대한민국 국민 70% 이상이 자신은 중산층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수식어가 되었고, 생활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좋은 단어가 되었다. 이런 어젠다를 가져야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노태우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현실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잘 이용했다. 자신보다 더 큰 사람이 있으면 잘 따라가서 좋은 자리를 갖게 되었고, 자신은 현 정권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여 제거되지 않았다. 타이밍을 잘 보아서 자타가 공인하는 자신 측 정치 세력의 대표 정치인이 되었다. 그리고 최상의 어젠다로 최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선거에 임했다. 그래서 당선되었다. 그는 스스로 준비하여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된 것 같다.
'영화 드라마 예능 예고 줄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통령이 될 사람 : 일곱 번째 대통령 김대중 (0) | 2022.02.01 |
---|---|
대통령이 될 사람 : 여섯 번째 대통령 김영삼 (0) | 2022.01.30 |
대통령이 될 사람 : 네 번째 대통령 전두환 (0) | 2022.01.24 |
대통령이 될 사람 : 세 번째 대통령 박정희 (0) | 2022.01.22 |
대통령이 될 사람 : 두 번째 대통령 윤보선 (0) | 2022.01.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