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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될 사람 : 일곱 번째 대통령 김대중

by 줄그결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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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는 규칙을 정하기 나름

이재명 후보와 윤설열 후보 단 둘만의 TV토론이 무산되었다. 어떤 언론에 따르면, 참고 자료 사용 여부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재명 후보 측에서는 아직 아마추어적인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선거에서는 규칙을 정하기 나름이며, 무엇을 해서라도 당선되고 봐야 하는 것이 선거다. 윤석열 후보 측에서 몽니를 부린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당 후보를 위한 수단일 것이다. 이재명 후보 측도 자당 후보의 토론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토론을 보여 주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는 토론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을 것이다. 토론에 연연하다가 92년 대선을 놓친 김대중 후보는 97년 토론에 연연하지 않고 인재 영입과 세력과의 통합에 집중했다. 그 전략이 성공하여 김대중은 일곱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김대중 후보

 

책을 통해 길을 찾고 길을 만들다

김대중은 목포에서도 한동안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에서 태어났다. 정규 교육과정은 고등학교까지 밖에는 받지 못했다. 대학교도 나오지 못한 대통령이다. 이번에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졸 출신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인데, 김대중은 최초로 고졸 출신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무식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방면에 걸쳐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와 대화를 할 지라도 화재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리드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했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마법이 있었다고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충신으로 그의 사후에도 김대중 정신을 이야기하는 정치 9단 박지원은 김대중을 만나기 전 전두환 대통령의 미국 순방 시 교민을 모아 충성을 다짐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김대중을 만나고 대화하던 중 인생을 대한민국을 위해서 바치겠다고 선언하고 일생을 김대중과 함께했다. 그 모든 원동력은 김대중의 독서력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잘 정리한 학자였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통일해야 하는 지를 잘 설명했던 "통일"에 대한 그의 식견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통일 로드맵인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만들도록 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면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지를 연구하기 위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는 죽기까지 독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사후 그의 방에는 그 당신 최신 서적이 상당수 쌓여 있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독서였다.

 

 

동지와 적이 되고 상대의 동지를 영입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박정희 정권은 어떠한 정치적 편법 없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김영삼은 그때 성장한 야당 정치인이었다.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만큼이나 새로운 민주주의를 원했고,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김영삼과 달변의 김대중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선거에서 이겨 가까스로 정권을 잡을 수 있었지만, 젊은 정치인들의 기세에 엄청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의 사람들은 김대중 김영삼을 경계하게 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등도 이들을 경계했으며, 박태준도 그들 틈에 끼여 김대중을 경계했다. 김종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김대중에게 적이었다. 김영삼은 김대중과 연합하여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영남과 호남 기반의 걸출한 정치인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동지였다. 그런데,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이후 김대중, 김영삼은 하나의 당에서 하나의 후보로 통합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계속 선거에서 경쟁하는 적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김영삼을 넘어야 했다. 김영삼과 함께하는 상도동계도 넘어야 했고, 그들이 3당연합을 한 후에는 거대 정당인 민자당을 넘어야 했다. 정치 자금은 민자당 중심으로 돌았고, 그에 따라 인재들은 그곳으로 많이 넘어갔다.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 금융실명제 등의 제도를 만들어 나라의 기틀을 제대로 세우고 세계화를 추진하게 되자 김대중과 민주당은 자리를 잃는 듯 보였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박정희의 처남으로 516을 주도했던 김종필과 연합했고, 김영삼과 동지가 되었던 박태준과도 연합하였다. 범 민주화 세력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은 우선 대통령이 되어야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거대 정당의 탄생으로 앞으로 수십 년간 야당은 명맥만 유지하게 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김영삼 대통령이 누구를 밀어줄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었는데,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연합이었다. 물론 상대 당도 이회창/조순 연합으로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신의 조직을 다스리면서 유연하게 상대당에게 통합의 조건을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김대중 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남자가 되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슬로건이다.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선거캠프는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아주 딱딱하고 보수적인 시스템이었다. 김대중 후보는 매우 논리적인 달변가 이기 때문에 선거 유세는 늘 호황이었고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당시 세상의 여론을 이끄는 도구는 TV였다. 정권의 나팔수라 불릴 정도로 여당 중심으로 움직였던 공영방송사들에 둘러싸인 김대중 후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짧지만, 강한 멘트였다. 멘트 내 실수가 없으면서 강력한 이펙트가 필요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대중 후보 자신밖에 없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의외였다. 윤석화라는 강한 이미지의 여배우가 커피 선전을 하면서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라고 이야기하는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왔다.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청중들 사이에서 폭소가 쏟아졌다. 공영방송에서는 어쩌면 김대중 후보를 깍아내리고 우스꽝스럽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멘트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도 엄청난 투쟁과 엄청난 사회 격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젠다 선정과 추진력에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김대중을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대중이 대통령 된 방법

김대중이 대통령 되기까지 그는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고, 일생을 바쳐 민주화하다가 아내를 잃고 어렵게 살기도 했다. 정치 일선에서 자신 때문에 자녀들의 앞길이 막히기도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려는 대통령병 걸린 사람으로 조롱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제대로 갖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선거 룰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판을 짰다. 적과도 함께하고 동지 하고 척을 지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어젠다를 선점하고 세상의 변화에 편승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살렸다. 대통령은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주변을 잘 이용해야 당선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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