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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을 보면서 보이는 태종과 세조 그리고 세종과 성종

by 이슈넘버원 2022.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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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을 보면서 보이는 태종과 세조 그리고 세종과 성종

KBS 드라마에서 보이는 이방원의 카리스마

주말이 되면 사극을 본다. KBS 사극 "이방원" 때문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고려 말 태조 이성계를 살리고 조선 건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왕자 이방원은 나쁜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왕이 되기 위해 손에 엄청난 피를 뭍혔기 때문이다. 비록 형제일 지라도 그는 칼을 들어 강력하게 제거했다. 성공한 쿠테타였음에도 역사에서는 "왕자의 난"으로 기록되어 있다. 권력 획득 과정에서 천륜을 저버렸기 때문에 유교중심 사고를 가진 사서들과 사학자들에게 박하게 평가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드라마 이방원은 그에 대해 좀더 긍정적인 스코프를 들이대고 있다. 그래서 이방원이 탐욕스럽다기 보다는 카리스마적으로 보인다. 

 

태종 이방원

 

자신이 살기 위해 들어야 했던 칼

조선 전기 왕위를 위해 직접 칼을 든 대표적인 왕으로 이방원이 있다. 그는 권력을 잡기 위해 칼을 든 것도 맞는 말이지만, 제거당하지 않기 위해 칼을 들었다고도 보여진다.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은 무력을 손에 넣기 위해 이성계와 손잡은 야망가로 보인다. 그는 권력의 속성상 이성계가 실각할 경우 자신의 입지가 매우 좁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고려말 조선초 이성계를 돕던 왕자들을 밀어내고 최대한 어린 왕자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 계획에는 이방원을 제거하는 것도 포함이었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이를 감지한 이방원은 칼을 들어 정도전을 제거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때까지 정종을 허수아비로 세웠다가 스스로 태종으로 등극한다. 

스스로 칼을 들지 못했다면, 제거되었을 것이다.

비슷한 인생을 산 왕이 있었는데, 바로 세조다. 세조는 세종대왕의 아들로 형인 문종을 보피하는 왕자였다. 그러나 병약한 문종이 어린 단종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자 제거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단종도 수양대군으로 불렸던 세조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고, 제거의 기회를 찾았다. 스스로 칼을 들지 않았다면, 수양대군은 제거되었을 것이다. 

태종도 세조도 자신이 살기 위해 칼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의 뒤를 이은 왕들은 태평성대를 열었고 조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태종의 아들 세종대왕은 한반도 5000년 역사 중 가장 뛰어난 임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세조의 아들 성종은 예종 다음의 임금이기는 하나 세조의 뒤를 이어 조선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의 임금이었다. 

이 두 태평성대의 공통점은 반대세력을 싸그리 정리해준 선대 왕이 있었다는 점이다. 반대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어 새로운 권력이 제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방원이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세종대왕을 만들어준 사람이라는 관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들 수 없는 칼 때문에 문종은 병들고 단종은 무너지다.

세종대왕의 장남 문종이 왕이 된 후 문종은 선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태평성대를 열고 싶었다. 강해진 왕권은 문종에게 유리한 듯 보였다. 그의 아들 단종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세종대왕과 함께 큰 조정 대신들의 힘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김종서를 중심으로한 세력은 왕의 뜻대로만 정치가 흘러가지 못하도록 했다. 더 이상 집현전은 왕과 함께 권력을 잡으려는 신진세력이 아니었고, 문종은 그들을 이용해야만 왕권을 더 강하게 할 수 있었다. 또한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건실한 동생들에게도 권력을 나눠줘야 균형을 맞출 수 있었는데, 어느 세력도 칼을 들지 않고 조정하려 하다 보니 늘 불만이 생겼고, 문종은 그 갈등 사이에서 병약해져만 갔다. 그 다음 왕 단종 역시 그 사이에서 어느편을 들어야 할 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김종서의 세력이 왕족을 누르고 사대부 중심의 권력 구조를 만들려 하자 쿠테타가 발생했고, 단종마저 실각하게 되었다.

 

이상해진 왕 연산

세종대왕 처럼 엄청난 왕권을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그 왕이 성종이었다. 조선왕조의 완성형 법전인 경국대전을 만들어 국가 체계를 명문화 하는데까지 성공하였다. 세조 시대에 많은 반대파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예종 사후 성종에게는 특별한 라이벌 없이 정치를 할 수 있었다. 백성의 삶은 윤택해 졌고, 변방은 조용했으며, 아들인 연산은 잘 자라났다. 그래서 그의 왕권은 굳건했다. 연산은 아버지의 권력을 그대로 물려 받아 강한 왕권 위에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세조시대 때부터 자신만의 위치가 있었던 한명회 수하들과 같이 정치를 시작해야 했다. 연산은 그 세력이 밉다기 보다는 왕권 강화를 위해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게다가 할머니인 소혜왕후를 등에 업은 세력들은 왕보다 더한 힘을 갖고자 했다. 연산은 그것을 이용하는 것보다 스스로 칼을 들어 보려 했다. 그러나 명분 없는 칼은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어머니였던 폐비 윤씨 문제를 가지고 정리하려고 했던 반대파들의 숙청은 어설펐던 자신의 지지세력이 얼마나 허술한 지만 확인되었다. 그래서 더 강하게 자신을 포장하려고 변태적인 파티를 열고, 사냥터 내 백성들을 쫓아내는 등의 일을 벌이다가 반대파들의 혁명에 정권을 놓치게 되었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태종 이방원의 삶을 통해 본 숙청의 의미

태종 이방원의 숙청은 세종대왕의 태평성대를 이룩하였다. 세조의 숙청은 성종임금의 태평성대를 이룩하도록 하였다. 세종대왕의 숙청 없는 왕권은 문종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물려 주었고, 성종임금의 숙청 없는 권력은 연산군의 사이코틱한 반항을 양산하였다. 태종 이방원의 삶이 다소 부정적으로 비쳐지는 KBS 드라마 이방원... 좀 더 다른 시각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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