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봄 정우성의 실제 모델 장태완과 그의 가족은 참혹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서울의 봄
성공한 쿠데타 였던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봄이 개봉했다.
영화는 전두환을 유일하게 막으려 했던 수도경비사령부의 장태완을 보여 줬다.
정우성이 이 역할을 소화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역사 영화입니다. 영화는 군사 반란이 일어난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의 9시간을, 영화 141분에 담았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축은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으려는 합동참모본부와 대통령 경호실의 이야기입니다. 합참의장 노태우(황정민 분)는 반란을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이성민 분)은 대통령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두 번째 축은 반란을 주도하는 전두환(정우성 분)과 노태우의 이야기입니다. 전두환은 반란을 성공시키기 위해 군심을 결집하고, 노태우는 반란을 주도하는 전두환과 갈등을 빚습니다.
영화는 긴박한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개봉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2.12 군사 반란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사건의 전개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영화는 특히 1979년 당시의 시대상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화는 유신 정권의 부패와 독재, 그리고 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잘 드러냅니다. 또한, 군사 반란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다룬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사건의 전개와 의미를 잘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전두환은 끝내 죄를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해 사죄할 뜻이 있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밝힌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적과 발언을 종합해 볼 때, 사죄할 뜻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항쟁이 발생한 직후, 광주를 방문하여 군의 진압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는 "광주 사태는 북한의 도발과 내란세력의 폭동"이라며 "군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정당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이후에도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해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95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항쟁 15주년 기념일에 맞춰 발표한 담화에서도 "광주 사태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가 2023년 3월 31일 광주를 방문하여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죄한 것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사죄할 뜻이 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우원 씨의 사죄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사죄를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두환 전대통령 본인이 직접 사죄하지 않는 한, 그의 사죄에 대한 국민들의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사죄할 뜻이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그가 살아있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행적과 발언을 종합해 볼 때, 사죄할 뜻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장태완의 삶은 어땠나요?
12.12 군사 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장태완은 반란을 막으려는 진압군을 지휘하다가 신군부의 반란군에 의해 체포되어 서빙고 분실에 수감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 2월 24일, 반란을 방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장태완은 1982년 5월 24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지만, 군복을 벗어야 했고, 모든 공직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서울에서 택시 운전사와 건설업자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장태완은 군인복권을 받고 예편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군사문제연구소 소장, 한국수호전선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군의 민주화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힘썼습니다.
장태완은 2011년 11월 24일 향년 82세로 별세했습니다. 그의 장례는 국가유공자 예우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치러졌습니다.
장태완은 12.12 군사 반란에 반대하고 진압을 지휘했던 군인으로서,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는 군의 민주화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장태완의 삶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그는 군의 민주화에 앞장선 인물입니다. 장태완은 12.12 군사 반란에 반대하고 진압을 지휘함으로써,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고 군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둘째, 그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인물입니다. 장태완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군인복권을 받고 예편한 이후, 군의 민주화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는 한국군사문제연구소 소장, 한국수호전선 회장 등을 역임하며, 군의 민주화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셋째, 그는 정의로운 인물입니다. 장태완은 12.12 군사 반란에 반대하고 진압을 지휘한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 징역형을 복역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해 헌신한 정의로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역사는 전두환은 독재자로 장태완은 의로운 군인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전두환은 끝내 사죄도 안하고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반면, 장태완은 군인으로 예편한 후 군의 민주화에 앞장서며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한 걸음 더 가도록 만들어준 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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