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윤이 연기한 김대건은 조선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다. 그 이야기를 서사한 영화 탄생! 김대건 안드레아
조선인 최초로 서양 학문을 배우다.
아명이 김재복인 김대건 신부는 조선 최초의 카톨릭 사제다. 김해김씨로 태어나 참수형에 처해질 때까지 천주교 사제로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이 있었다.
바다를 건너 서양 문물을 공부하러 가는 김대건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된다.
최초 카톨릭 사제의 탄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카오로 가서 서양의 학문을 배우러 가는 김대건 윤시윤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그는 서양의 학문이 조선을 새롭게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인 가운데 최초로
서양의 학문을 마카오에서 부터 배우는 기회를 얻게된 김대건 윤시윤
깊은 이해와 노력이 시작됐다.
1834년 입국하여 조선에 카톨릭 교회를 퍼뜨렸던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는 김대건을 데리고 중국 마카오로 갔다.
마카오는 명나라 시대부터 포르투갈의 임대 영지였다. 그래서 중국 마카오까지 가면 비밀리에 서양 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그 학문은 사제 수업이었다.
사제 교육을 받는 기간은 순탄하지 않았다.
마카오에서 아편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아편은 중국 청나라가 멸망하게 된 매우 위험한 마약이었기 때문에 정세가 혼란해 졌다.
이때 김대건은 필리핀으로 피신했고, 거기에서 사제의 수업을 이어나갔다.
김대건 신부는 조선교구 3대 교구장에 임명된 페레올 주교와 함께 상하이에서 한국으로 들어온다.
김대건 신부의 임무는 천주교 선교사들의 입국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중국 어선들이 조기잡이를 위해 조선 해안에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대건 신부는 조선 지도와 편지들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 보내려 했다. 그러다가 발각되어 해주목에 위치한 황해감영의 조사로 체포되고 천주교 사제라는 사실이 발각된다.
조선 김대건을 이용하고 싶었다.
김대건은 언어에 능통했다.
사제로서 인품도 훌륭했다.
세계적인 감각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천주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그를 설득하고 싶었다.
김대건 신부도 조선 정부를 설득하여 천주교를 박해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그의 생각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으랴...
그는 순수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순수한 청년의 여정
청년 김대건은 자신의 길을 갔다.
조선의 대표로서 프랑스-조선 협상을 이끌고자 했다.
그러나...
프랑스도 조선 정부도 각자의 입장이 있었다.
프랑스와의 협상
프랑스 해군의 장 바티스트 세실 제독은 기해박해 때 프랑스 선교사들이 처형된 사건에 대해 항의했다. 물론 속 뜻은 조선의 문호 개방이었고 독점적인 불평등 조약을 원했다. 조선 정부는 특히 흥선대원군은 김대건 신부를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김대건 신부는 영어 스페인어 라틴어 중국어 프랑스어 5개 국어 구사가 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쓸모가 많았다.
그래서 기대했으나,
프랑스는 불평등 조약만 원했고, 꼬투리를 잡아 공격하고 싶은 마음만 컸다.
김대건 신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뜨거운 가슴뿐
김대건 신부는 이 어려운 난관을 넘어 설 수 없었다.
인간이 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대세는 조선의 퇴락이었고, 외세의 침략이었다.
프랑스만 넘으면 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영화는 그 과정을 하나 하나 다 보여준다.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조선 대신들은 김대건 신부를 이용하려만 했다. 그래서 청년 김대건에게 천주교를 거부할 것만 요청했다.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타야 하는 사람이 유교가 아닐 경우 연대한 세력에게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김대건 신부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정부에 협조만 했다.
배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협상을 잘 이끌고자 했으나, 프랑스 함대는 자신들의 입장만 계속 주장했다.
급기야 문서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떠나 버렸다.
협상이 결렬되자 김대건 신부는 처형을 당해야만 했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서사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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