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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의 매력

by 줄그결 2023.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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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가 중 세계적인 명망을 얻은 2세대 스타의 대표적인 인물을 뽑으라면 장한나와 장영주를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성을 가진 두 사람은 장영주(사라 장)는 바이올리니스트고, 장한나는 첼리스트다. 우리나라 클래식 스타의 1세대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정명훈 등을 꼽을 수 있고, 3세대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 조성진,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등이 있다. 최근 장한나는 오랜만에 한국의 예능에 출연해 특유의 입담으로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장한나라는 우리나라의 걸출한 음악가가 걸어온 길을 한 번 따라가 본다. 

 

신동 첼리스트의 출현

1982년 생인 장한나는 1985년에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을 시작했고 3년 간 피아노를 배운 후 첼로를 배웠다. 장한나의 말로는 피아노는 너무 커서 본인이 가지고 다닐 수 없고 페달을 밟고 싶을 때 밟을 수 없어서 피아노는 자신의 악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리지만 자신만의 생각이 분명했다. 그렇게 첼로를 배운 지 4년만인 만 10세 1992년에 월간음악이 주최한 전국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장한나의 부모님은 장한나의 재능을 키워줄 만한다고 판단해서 그의 연주 영상을 비디오로 찍어 줄리어드 음대에 보냈고 줄리어드에서는 장한나를 특별 장학생으로 그다음 해 입학을 결정했다. 그리고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한다.

 

국제적인 명성과 두 스승과의 만남

장한나는 그 1992년, 10살의 나이로 인생의 스승인 미샤 마이스키를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내한 공연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마이스키가 장한나의 첼로 연주 영상을 보고 장한나에게 편지를 보낸다. 장한나를 보고 그녀의 스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마이스키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미샤 마이스키도 참 대단한 사람 같다. 한참이나 어린 소녀에게 세계적인 음악가로서의 자존심을 내려 놓고 먼저 스승이 되기를 자처한 그의 자세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자세인 듯하다.

 

 

 

그렇게 마이스키와 장한나는 사제 관계가 되고 그다음 해인 11세 때 장한나는 줄리어드에 입학을 했다. 미샤 마이스키는 그의 유일한 제자가 장한나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녀를 향한 애정이 넘친다. 

 

이어서 장한나는 1994년에 제5회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로써 그녀는 첼로 천재라는 타이틀을 얻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는 파블로 카잘스와 함께 첼로의 거장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첼리스트로서 장한나는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이후 로스트로포비치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실제 장한나의 처음 데뷔 앨범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스스로 지휘를 하며 아낌 없는 지원을 해줬다. 

 

미샤 마이스키에게 계속 사사 받으며 장한나는 1995년에는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통해 데뷔 앨범을 냈고 1997년부터는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그 명성을 드높여 나갔다.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사진 찍은 장한나

 

다양한 행보

장한나는 과연 천재인 것 같다. 첼리스트로만 살 수 없게 하는 그녀 안의 깊고도 다양한 열망이 그로 하여금 여러 행보를 이어나가게 했다. 2001년에는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그녀의 말로는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의 좀 더 깊은 이치를 알고 싶어서 철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첼리스트의 명성으로 입학한 것이 아닌 연주 도중 틈틈이 공부하며 당당히 SAT 시험을 쳐서 하버드에 합격한 것이다. 공부를 하든 연주를 하든 엄청난 몰입으로 본인의 열정을 다 태우는 그녀의 행보는 또다시 거침없이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2007년 장한나는 지휘자로서 그녀의 음악 인생을 전향했다. 첼로로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스펙트럼보다 지휘자로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더 넓어서 지휘를 선택했다는 그녀의 말. "첼로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의 수는 제한적이다. 나는 더 많은 음악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2007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제 1회 성남 국제 청소년 관현악 축제의 마지막 날 연주를 통해 지휘자로서 처음 대중 앞에 섰다. 그리고 2009년부터 2015년 전까지 매년 여름 성남아트센터에서 청소년들로 구성된 관현악이 연주하는 앱솔루트 클래식 페스티벌을 지휘했다. 2010년에는 장한나의 지휘 스승인 로린 마젤이 장한나를 응원하기 위해 실제 우리나라를 방문해 앱솔루트 클래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2013년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했고 2014년에는 영국 BBC프롬즈에도 초청받는 등 지휘자로서 입지를 잘 다져 나갔는데 2014년 9월에 갑자기 그녀는 사임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지휘 스승인 로린 마젤이 타계한 지 2개월이 지난 즈음에 벌어진 일이다. 그렇게 약 2년 간의 공백기를 보낸 후 장한나는 2016년 노르웨이의 트론헤임 관현악단의 2017년과 2018년 시즌 상임 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2023년까지 그 계약은 연장되어 현재 그녀는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소속이다. 

 

실제로 2019년에 장한나는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고국에서 연주를 했는데 노르웨이 국적의 관현악단이니만큼 노르웨이의 대작곡가 그리그의 곡을 레퍼토리로 선정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도 연주되었다. 

 

2022년 5월 말에는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비엔나 심포니의 방한 연주에서 당시 코로나에 걸린 지휘자 대신 장한나가 지휘를 맡아서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올 해 2023년에는 지난 6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방한 지휘자로서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다가오는 9월에는 전주, 대전, 경주, 서울에서 그녀의 스승인 미샤 마이스키와의 협연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이 되기를 스스로 자처했던 미샤 마이스키는 지휘자로 전향한 그녀의 선택을 두고 많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 또한 그녀의 음악에 대한 진중한 선택이니 만큼 존종한다면서 유일한 제자로서 그녀를 향한 애정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장한나의 매력

이렇게 간략하게 되돌아 보기만 해도 숨이 차오르는데 그녀의 40년 인생은 실제 얼마나 치열했을까 짐작해 본다.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던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 대해 한 말 중에 몰입을 잘한다고 한 말이 있다. 무언가에 집중했을 때 누가 들어가고 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본인만의 세계에 깊이 빠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중력이 있었기에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가 될 수 있었고 지휘자로서도 지경을 넓혀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한나는 엄청난 독서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녀가 말하는 인터뷰만 봐도 그녀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피아니스트 손열음도 비슷한데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한 곡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특유의 세심한 집요함이 독서를 통한 깊은 사유의 훈련에서 나온 듯하다. 그녀들의 정신세계는 우주와도 같아서 그 생각이 어디로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손열음은 실제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한나는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찬사를 보낸 첼리스트의 자리를 스스로 떠나 또 다른 낯선 분야로 용기 있게 걸어간 거인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의 회의적인 시선이 느껴질 만도 한데 그런 부정적인 신호에는 아예 스스로를 차단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이 몰입하기 원하는 지휘라는 새로운 영역에 기꺼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내던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우직하게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길에서 자신의 혼을 다해서 충실히 사는 그녀의 모습을 참 닮고 싶다. 그녀가 레너드 번스타인을 닮고 싶어하듯 우리도 그녀의 삶에 대한 열정을 닮고 싶다. 

 

 

장한나와 미샤 마이스키 내한 공연 예매

장한나 내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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