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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사람 사용법

by 줄그결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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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용할 줄 알아야 천하를 얻음


조조의 위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시작한 적벽대전에서 겨우 목숨만을 부지하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촉에는 제갈량이 있었고, 오에는 주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국에 위가 천하를 호령하게 된다. 천하 제일의 무장 관우, 장비, 조운에 제갈량이 있어도 적제적소에 사람을 배치한 위나라를 넘볼 수 없었고, 종국에는 위나라가 천하를 지배하게 되었다. 삼국지가 고전인 이유는 현실을 잘 반영해서가 아닐까? 사람을 잘 사용할 줄 아는 기업 또는 나라가 세상을 호령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보고 있다.

 


(충성하는 충신 활용) 이학수 고문


고 이건희 회장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이학수 고문이다. 그는 이건희 회장과 삼성 그룹을 이끌었으나, 세간에 그리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순환출자, 상속, 에버랜드 등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여 국민적 지탄에 대상이 되자 이학수는 모든 잘못을 질머지고 법적 책임을 졌다. 삼성은 이학수를 끝까지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보호하고 그가 한 일에 대해서는 금전적으로 보상했다.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나 삼성생명 주식의 0.47%를 이학수 고문이 보유하고 있다. 당시 시가로도 9천억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성은 삼성맨들에게 회사 내에서 끝까지 충성하는 충신이 되면 어느 수준의 부를 얻을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었다.

삼성 처럼 인재 풀도 넓고 사용법도 알아야


(직언하는 충신 활용) 이종왕 고문

 


이종왕 고문은 검찰 출신의 법통이다. 삼성그룹 내부의 음성적인 여러 사건들을 양성화 하여 세간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사건을 해결하면서 코어에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결벽증에 가까운 자기 관리로 매우 유명했다. 공직 생활 중에도 모범을 보였으며, 퇴직후 김앤장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학수 당시 부회장은 이종왕 고문을 십고초려 하여 모셨다는 후문이 있다.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이종왕 고문은 법무팀을 총괄하면서 삼성 그룹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오너리스크를 최소화 시켰으며, 이재용 부회장이 위기에 빠질 때 복귀하여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은 그에게 억지로 부를 안겨 주지 않았다. 삼성은 이종왕 고문에게 정당한 대가를 제시했고 그가 원하는 만큼만 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종왕 고문에게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그의 이야기는 경청하였다. 소문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사후 재산 분할의 문제에 있어서 이종왕 고문의 말에 힘이 있어 큰 잡음 없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직언하는 충신에게는 신뢰와 명예를 주었던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그의 장례비용을 직접 챙겼다고 한다.



(적 활용) 가장 강력한 비판자에서 쇼핑백 셔틀남 박효상 상무

 


삼성그룹을 정말 아프게 잘 깠던 기자로 한겨레 박효상 기자가 있었다. 2005년도 한겨레 심문 경제면에 그는 "삼성생명 검사 방해해도 금감원 '송방망이'처벌" 이라는 기사를 올리는 등 삼성을 비롯한 재벌에 대하여 매우 강한 비판을 쏟아 냈다. 삼성그룹의 적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삼성전자 DM사업부 차장으로 이직했다.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이 잠시 구치소에 갔다가 나오는 날 쇼핑백을 셔틀하는 모습을 언론사 후배들 앞에서 보여 주었다. 소문에 의하면 삼성에서 일하는 전직 기자가 약 340여명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은 충신을 아주 가까이 둔다. 하지만, 적은 더 가까이 둔다. 적을 알을 품듯 품어서 병아리로 부화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족 관리) 삼성전자·물산·SDS 지분 법정 비율대로 상속

 


삼성그룹에서 시작한 여러 그룹사들이 있다. 신세계, CJ 외에도 한솔그룹, 새한, BGF, 중앙(일보) 그룹 등도 범 삼성가로 불린다. 삼성그룹은 일정 거리를 두면서 각각의 기업이 성장하는 것을 막지 않는 방법으로 삼성가 규모를 키우는 전략을 써왔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와 미망인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 이렇다할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경영권 승계를 준비해 온 이재용, 호텔신라를 호텔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 이부진, 남편과 함께 자신의 자리를 완고하게 지킨 이서현 그리고 중앙일보가 뒤에 있는 홍라희 모두 쟁쟁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고 천문학적인 세금이 세간에 화재이긴 하였으나, 재산 분쟁 및 경영권 다툼 관련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철저한 가족 관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삼성의 강력한 전환점으로 알려진 "세계 일류 선언"에서도 이건희 회장은 가족 빼고 다 바꾸라는 이야기를 한다. 가족만은 지켜야 한다는 반증의 철학을 가졌던 것 같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삼성의 인재 등용

 


아이폰3가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함과 동시에 석권해 나갈 때 삼성의 주력 핸드폰은 윈도우 기반의 느린 피쳐폰 "옴니아"였다. 삼성은 아이폰의 선전에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폰은 사람이 사용하기 편리했고, 옴니아는 불편했다. 아이폰은 확장성이 무궁무진했고, 옴니아는 답답했다. 삼성은 국내 인재만으로는 아이폰의 경쟁자로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삼성 내부 인원으로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었으나, 사용감을 만들고 유연하게 조직을 변화시키려면 외부 인원이 필요했다. 삼성의 전략은 누구든 삼성이랑 일하고 싶은 엔지니어 또는 학자가 있으면 같이 일하자 였다. 당시 지인의 전언에 따르면, 스탠포드, MIT는 물론 캐나다 명문 맥길까지 삼성의 인사담당자가 찾아가 인재를 물색했다고 한다. 삼성은 생각보다 사람을 잘 다룬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는 리더십이 있다면, 인사 시스템은 삼성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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